나는 걷는다 3부작의 마지막 권을 갑자기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읽고 있다. 지금은 잠시 놓았다. 이 책의 작가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에니어그램으로 치면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인 것 같다. 아니면 어떤 면으로든 연관이 되어 있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사람의 글을 읽고 나면 언어로 가득차서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연휴를 지내는 동안의 짧은 생각들을 풀어놓기로 한다.
지난번 생리주기 관련 글을 쓴 이후로 바로 위장이 멈춰서 죽이나 흰밥만 먹었다. 명절연휴에도 그랬고 조금씩 상태를 테스트 하느라 반찬을 먹는데, 맵고 기름진 건 절대로 안되고 천천히 먹는 게 도움이 되는 듯 하다. 명절연휴를 외할머니댁에서 보냈는데,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것저것을 먹으라고 권했고, 내가 아파서 못먹는다고 상황을 설명해도 그 때 뿐이었다. 다른 친척분은 평생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겨 본 일이 없었던 게 분명했다. 정말 맨밥만 먹는다는 내 말을 못 믿는 눈치더니, 식사시간에 정말 맨밥만 천천히 먹고 있는 나를 보고 놀라 할 말을 잃었다. (회사에 가서도 당분간은 점심을 혼자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마 그 기간이 길어질 수록 놀라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긴 같이 먹는 게 더 놀라겠지.) 다행히 이모가 적절한 시기마다 내가 아파서 못먹는 거라고 설명을 보태주었다. 우리 할머니는 이제 죽을 때가 다 되었다며 집에 있는 물건들을 유품 나누어주듯 나누어주려고 했는데 사실 죽기에는 너무 정정하셨다. 밥도 나보다 잘 드셨다. 할머니가 아픈 그 동안의 일상을 말했는데, 솔직히 내 상황보다 낫길래 내가 내 일상을 말씀드렸더니, 넌 젊은 애가 어찌 그렇게 살겠냐고 안타까워하더니 1분도 안되서 본인이 죽을 때가 다 되었다는 이야기를 또 했다.
빨래를 돌려놨더니 정신이 자꾸 세탁 다 되는 시각을 체크하느라 쓰려고 했던 글이 가물가물해진다.
외갓집에서 설날을 보낸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관찰하고 느꼈던 점을 생각해보았다.
외삼촌네 세 남매 중 딸 둘은 결혼을 했고, 아들은 아직이다. 어렵다고는 해도 생활이 안정적인 편이라 다들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고 그들 중 둘은 결혼까지 했지만, 아들은 아직 직장이 없어서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여동생은 직장도 없고 심지어 대학을 다시 다니려고 하는데도 결혼을 할 수 있었으니, 돈이 있어야 결혼 할 수 있다는 진리(특히 남자)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그(사촌남동생)와 나는 결혼적령기임에도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로 취급받았다. 어쨌든 결혼을 안했으면 결과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외할머니댁에서 본 개콘에서 10대에는 학교진학, 20대에는 취직, 30대에는 결혼 문제로 비교당하는 현실이 나왔는데 그게 어떤 건지 나는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어른들은 30대의 문제에 좀 더 당당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 문제만큼은 잘 해결해서 오늘날의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학교진학과 취직문제는 소위 사회적 기준으로는 내가 가장 나았기 때문에 뭐라 언급하기 불편했을 수도 있다.) 비교당하는 건 차별받는 느낌이었다. 그들을 우월하고 너는 열등해. 그런 느낌이었다. 어느 누구 하나 대놓고 비교하진 않았어도 이렇게 당연한 일을 너는 왜 안하니? 이렇게 좋고, 행복한데. 이런 메시지가 순간순간 전해지는 듯 했다. 결혼하지 않은, 혹은 자식이 없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도 얼마든지 있는데 그들은 적어도 그 존재를 모르는 것 같았다.
또 하나 조금 놀랐던 건,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 외갓집은 꽤 남녀차별이 없는 가족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아니 꽤 없는 건 맞지만, 생각보다 남아있었다. 설날 아침 가족예배를 드리는데, 외삼촌(집안의 장자)이 한 명 한 명을 기도해주시는데 남매 중 누나가 있는데도 동생이 장자라는 이유로 먼저 호명하며 축복했다. 누나의 이름은 나중에 불렀다. 아들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가족식사에서 여자들과 아이들은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고 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했지만(서른 미만의 남자 사촌들은 식사준비를 도왔다), 나이가 서른이 넘은 남자들은 모두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즐겼다. 서른이 넘은 여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일을 했는데 그건 그들이 이 집의 주인이라 그럴 수도 있다치면, 그들이 그들의 시댁에 가면 손님이라서 식사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게 공개되어 이야기 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얇게, 모두의 의식에 배어있었다. 그게 상식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누가 이런 문제를 거론하면, 나는 그렇지 않았어. 라던가, 그렇게 심하지 않은데 왜 굳이 문제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만드냐고 불편해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뭐. 그냥 그랬단 얘기다. 좋은 점도 많이 있었다. 내가 언급하지 않았을 뿐. 그리고 우리 집 명절 분위기는 이것보다 훨씬 심하다. 남녀차별은 크게 없지만(아들인 막내는 제사 빼고는 어른들에게서 누나들보다 중요하게 인정받지는 않는다) 여자만 심하게 일하고 남자는 놀고 먹고 음식 맛없다고 타박까지 하는 분위기이니까. 이런 분위기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내가 경계의 눈초리를 내려놓는 건 쉽지 않다. 이 전투적인 분위기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외갓집식구들은 대체적으로 매우 온화한 성격들이라서 부럽고, 내 성격이 조금 부족한 듯 느껴지다가도 내가 살아온 맥락을 고려해보면 이정도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몇십 년간 우리 집에서 살아보면 당연하다. 그리고 내가 우리집을 선택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걷는다 책을 사고 싶다. 그가 관찰한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문화와 사람들 이야기는 너무나 이국적이고, 신선한 표현들이 많이 있다. 그가 썼던 표현들 중 맘에 드는 부분들을 하나하나 노트에 옮겨적고 싶다. 그리고 나도 이런 여행을 가고 싶다. 오래오래 천천히 걷고 싶다.
명절에 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알게 된 건, 나의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러니 나의 이 겨울철 꺼질 듯 약해져 있는 생명 에너지도 하나님이 채워주시겠지. 상담은 결국 생명에너지를 불어넣는 일이다. 내안의 에너지를 내담자에게 불어넣는 일인데, 난 내가 서기에도 너무 약한 에너지를 가지고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자조했었다. 그 문제의 답은, 하나님이 채워 넣으시리라는 것. 겨울이 길고 춥고, 내 위장은 잔뜩 얼어붙어서 달팽이보다도 천천히 움직이며 깊은 잠을 잘 수 없게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있지만, 하나님이 책임지실 테니 내일 출근도,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학교 스케줄도 모두 어떻게든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운 없으면 하나님을 대박 원망함...)


